2010년 11월 2일 화요일

의안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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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 이란?
눈의 외상이나 종양, 여러 질환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안구적출술(enucleation of the bulb)이나, 안구내용제거술(exenteration of the eyeball)을 받은 경우, 또는 시력을 상실하고 안구의 위축, 홍채의 손상및 각막백태현상등의 영향으로 외관상 표시가 나는 경우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이때 눈의 모양을 의안으로 회복하여 정상적인 안와의 형성과 유지, 골격의 발육을 촉진하고 미용적으로 정상눈과 같이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신적인 컴플렉스를 떨쳐버리고 정상적인 사회활동 및 원활한 대인관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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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이 실명된 사람이 의안을 착용한 뒤 눈물을 흘리는 거야. 정작 자신은 보이지도 않는데 말야.”

◇ 그가 그리는 눈은 선과 면이 아니다. 점이다. 하나하나 점으로 연결된 눈을 만들고 있다. ⓒeyeng

그는 오늘도 눈을 그린다. 환한 대낮이지만 백열등 스탠드는 그의 검지손가락 위해 놓인 눈을 비추고 있다. 선과 면으로 그려지는 눈이 아니다. 점이다. 수천, 수만의 점을 연결해 하나로 완성하고 있다. 이내 다시 지운다.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작업책상 위에는 수십개의 눈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 직경이 3cm가 채 되지 않고 무게는 1g정도인 눈들이 그에게 최고 눈을 만들 것을 말하고 있다.

부산 역 앞에서 ‘평화의안’이라는 전문 의료기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전말수(56) 평화의안 대표는 아침부터 밤늦도록 점으로 눈 그림을 그려낸다. 36년 동안 이일만 고집해 온 전 대표를 만났다.

“참 어려웠어요. 의안이라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전 대표가 처음부터 의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30여년 전 부산에서 콘택트렌즈를 제작하는 회사에 입사한 것이 계기가 됐다. 회사에서 알게 된 것이 의안이었고 틈만나면 의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렌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알게 된 그가 회사를 떠나 시작한 것은 안경원이었다. 시력이 나쁜 사람들에게 안경을 제작해 주면서도 틈나는 대로 의안에 대해서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람의 눈을 사진으로 찍은 뒤 그 필름을 이용하면 편하고 쉽게 의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직접 그리죠. 기계가 할 수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거죠. 기계는 2%가 부족하다고 할까요?”

◇ 전 대표가 새롭게 만든 향균 의안(노란색)과 일반의안이다. 향균의안으로 보다 안전한 의안을 제공하는 게 전 대표의 꿈이다. ⓒeyeng
수입은 괜찮았다. 80년대 당시에는 안경원이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호황을 누리던 안경원을 과감히 접었다. 의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손으로 직접 눈을 그리는 작업이라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어요. 안경원과 함께 할 수 없더라고요. 고민 많이 했죠.”

전 대표의 의안 사무실은 식약청에서 허가를 받은 전국 5곳 중에 하나다. 지금까지 자신의 손을 거친 의안사용자만 3000명이 넘는다.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된 양순용씨의 의안을 만들어 준 것이 가장 이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했다. TV에서 국군포로였던 양씨가 한쪽 눈이 실명된 것을 알게 돼 의안을 직접 만들어 준 것이다.

“직접 찾아갔어요. 실명돼서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눈을 뜨고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그랬죠. 그래서 무료로 의안을 만들어줬어요. 그때 고마워하면서 제 손을 잡아준 그분의 모습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는 또 두 눈이 모두 실명된 사람들이 찾아와 의안 제작을 주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일을 선택한 것이 참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로 맹인 안마사가 많이 오죠. 손님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기 위해 의안을 사용하는데 정작 자신을 볼 수 없죠.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그러면서도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릴 때면 ‘이 일이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중국시장 공략, 향균의안 보급, 아들에게 의안기술 전수 등은 전 대표에게 남은 마지막 꿈이다. ⓒeyeng
전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중국시장을 공략하는 것과 향균 의안을 보급하는 것이다. 아직 중국시장은 알려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시장이라는 것이 전대표의 말이다.

“중국시장은 몇 년 전부터 겨냥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 왔고 현재 꾸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향균 의안은 미국 등에서 특허를 받았습니다. 보다 안전한 의안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죠.”

전 대표의 또 다른 꿈은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다. 관광학도인 아들에게 의안기술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을 내 아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집안의 가업을 잇고 싶어요.”

그는 이어 의안시장에 대한 바람도 드러냈다.

“의안 제작과 관련된 교육과정이 분명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기술표준화도 시급하죠. 그러나 의안시장이 그렇게 크지 못해요. 수요가 많지 않다는 거죠. 의안 제작자 수가 늘면 시장이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도제방식으로 기술이 전수됩니다. 그렇게 전수된 기술은 보이지 않는 룰에 의해 시장형성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2%가 부족하다고 했다. 기계와 사람이 직접 만드는 의안의 차이는 딱 2%라는 것이다. 의안으로 세상을 보게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혼을 불어넣는 의안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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